프란시스 하
감독 노아 바움바흐 (2012 / 미국)
출연 그레타 거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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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화를 두 번 이상 영화관에서 재관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며칠 전 <프란시스 하> 2차를 찍었다.



이 한 달 동안, 아주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이사 이야기가 나왔고, 수 많은 고민 끝에 궤도를 완전히 수정하였다.

골치였던 문제를 해결하고, 마음이 차분해진 상태에서 본 <프란시스 하>는 전에 봤을 때와 많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현재의 빵팔이 상황은 마치 모교에 기숙사 조교로 들어가 음료를 따르고 있는 프란시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뭐 하는 짓인지..'인 상황. 저번에 봤을 때엔 크게 다가오지 않았던 프란시스의 상황이었지만, 이번엔 유난히 크게 다가오더라. 


프란시스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자신의 일을 찾았고, 원하던 동네에 집도 얻었다.

나는 그런 프란시스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늘 가지 않은 길에 호기심과 부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삶은 이런 거였다. 밤 늦게까지 녹음실에 틀여 박혀 있다가 늦은 밤에 귀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맥주를 한 캔 마시며, 첫 해 월급을 모아 구입한 안마 의자(!)에 앉아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것. 이 삶이 먼지의 원소처럼 부서지고, 나는 내가 가지 않은 길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깔끔한 오피수룩을 입고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하는 삶. 출퇴근 시간의 지옥철을 견디고, 이케부쿠로든 어디든 허브 등의 술집에 들러 한 잔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삶. 참 그 모양만 부러워 했던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는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으면서. 


어느 덧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벌어져 다시 돌아갈 엄두 조차도 나지 않는다. 서른이 되어서야 남들처럼 직장에 취직하여 매달 꼬박 월급 받으며 생활하는 삶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가지 않은 길이지만 애초에 내 앞에 선택지로 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던 삶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데스크 업무는 하지 않겠어'라고 생각한 것이 평생 나를 그길로 인도하였다. 정말 삶은 생각하고 마음 먹은대로 간다더니.

그래도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보통'과 '평범'을 부러워한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 없이, 홀로 외로운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가끔 고개가 절로 떨궈질 만큼의 절망감으로 다가와 나를 괴롭힌다. 대개는 보통과 평범이라는 단어가 부재한 삶에 조금 으쓱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보통으로, 남들 하는 것 만큼,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꺠닫기 시작하면서, 도대체 나는 어디서부터 이렇게 틀어졌는가- 생각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나는 프란시스와 다른 길을 간다. '가장 보통의 뉴욕에서 만나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포스터 속의 소개글처럼, 프란시스 삶은 모두의 삶일 것이다-나를 제외한.


나는 어떤 삶을 살까.
갑자기 방향이 바뀐 삶을 균형 잡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호주에서 보내는 6~7개월, 대만에서 보내는 6~7개월, 독일에서 보내는 1년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갈까.
모두가 원하는 안정감은 커녕, 약간의 불안과 기대감에서 오는 두근거림만이 내 안에 있다.
서른, 만 스물 아홉. 여전히 발이 멈추지 않는다.



キミの夢が叶うのは
誰かのおかげじゃないぜ
風の強い日を選んで
走って来た

飛べなくても不安じゃない
地面は続いてるんだ
好きな場所へ行こう
キミなら それが出来る
- the pillows 「funny b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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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셋
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 (2004 / 미국)
출연 에단 호크,줄리 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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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9년 후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비포 선라이즈>가 로맨스 영화였다면, <비포 선셋>은 그 장르를 조금 달리한 영화였다. 
개인적으로는, <비포 선셋>이 조금 더 마음에 남았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조금은 의도된 재회,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라는 짧은 시간.
9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준 어색함인지, 아니면 9년 전 다시 만나자고 했던 약속이 엇갈려서인지, 처음엔 둘의 대화가 겉돌았지만, 두 사람은 9년 전처럼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 러닝 타임 내내.

9년이 지나 30대가 된 그들은 20대의 그들과는 달랐다. 셀린이 꺼내는 이야기의 주제도 더 이상 그들이 아닌, 세상 이야기가 되었다. 조금은 가벼웠던 남자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에 눌려 살고 있고, 다소 진지했던 여자는 많은 관계의 상처 속에서 나약해져 있었다. 

영화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다 머릿 속에서 사라지네.
그저, 30대의 그들은 더 이상 20대의 그들과 같지 않다는 것.


나이가 서른이 되었다. 더 이상 20대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계속 일본에 있었더라면 지금 이 순간 나는 29세의 20대인데, 지금의 나를 20대로 자각할지 아니면 한국 나이대로 30대로 자각하고 있었을지. 20대에는 와닿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던 '현실'이라는 말이 30대에는 옭아매기까지 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20대이고 싶은 나는- 30대가 되고 싶지도, 보통의 30대처럼 그놈의 빌어먹을 '현실'이라는 단어를 내뱉으며 분명 후회하고 아쉬움이 있는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선택을 최선이었다며 자위하고 싶지 않다. 


삶의 많은 순간- 아! 그때 이랬더라면! 이라는 절정의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제시에게는 늘 6개월 후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던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제시만큼의 지독한 아쉬움이 남는 순간은 없는 것 같다. 전에 내게 물었다. 인생을 리셋한다면 어디에서 리셋하고 싶냐고. 그래서 '311지진 이후 한국으로 일시귀국을 않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갑자기 내가 너무 과거에 묶여 살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훗날 제시만큼의 아쉬움을 느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 인생을 리셋하고 싶은 타임이 없다고 대답하고 싶다. 30대가 되니(만으론 20대인데!) '죽음'이나 '삶의 길이' 이런 것들이 무척 크게 다가온다. 내 삶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마냥 길게 잡고 살고 싶지는 않다. 길게 산다면 그건 '덤'이라고, 우왕 럭키~라고 생각하고. 
재정비가 필요하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새로운 출발점에 설 때가 다가온다.

-
영화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차갑고 건조해져버린 셀린의 변화가 조금 슬펐다. 하지만 배에서 내려 차를 타고 셀린의 아파트로 가면서, 셀린에게서 나와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면서, 그녀는 그저, 외로울 뿐이라고 느꼈다. 특히 "I mean, I'm really happy only when I'm on my own. Even being alone... it's better than... sitting next to a lover and feeling lonely."라는 말은... 내가 늘 하는 말이다.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삭막한 사람들이 가득한 파리에서 혼자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며 산다. 게다가 잊지 못하는 남자는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어 행복해 사는 것 처럼 보이고. 셀린이 변한 게 아니라, 셀린이 처해있는 상황이 변한 것이다. 낭만은 못 믿겠다, 더 이상 사랑은 하고 싶지 않다-라는 셀린은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외로운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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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
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 (1995 / 오스트리아,스위스,미국)
출연 에단 호크,줄리 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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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본 비포 선라이즈.
조금 더 어렸을 때, 이 영화의 후속이 두 편이나 더 나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때 봤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장면들이 많았지만, 그 중 가장 마음에 든 장면은 두 가지. 
하나는 비엔나에 내려 들른 레코드 샵<Alt & Neu>(영어로는 Old & New)의 음악 감상실에서 음악을 듣고 있을 때의 두 사람의 시선 교차. 셀린(줄리 델피 분)이 제시(에단 호크 분)에게 눈길이 가고, 제시와 눈이 맞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끌리는 것이 들키지 않도록 눈을 피하고. 나는 그 장면이 너무나도 설레었다. 남녀가 서로에게 동시에 마음이 끌린다는 것,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또 하나는 실내 카페에서 각자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에게 전화를 건다는 설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씬. 두 사람은 서로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 상대방의 진심을 듣게 된다. 난 이 씬이 무척 낭만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20대라서(!)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30대가 되어, 어느 한 쪽이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현실에 들어가 있다면, 더 이상 상대방의 상콤달짝한, 사랑이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대로 들어주지 못하고, 이미 그런 맛을 느끼는 감각을 잃은 혀로 '현실'만 알려주려 할테니 말이다. 그리고 30대이고, 친구들의 반이 결혼하였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런 장면은 내 삶에선 판타지에 가까운 것일테다. 

둘이 공원에서 밤을 지새우고 오전부터 셀린의 반팔티가 없어진 것(!)이 눈에 띄였다.

여행은- 현실과 생활 속에서 가장 큰 일탈일 것이다. 여행지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혹은 누군가에게는 동성)을 만나, '로맨틱'한 짧고 강렬한 사랑을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판타지이기도 할테다. 나를 제외하고. 나는 사절하고 싶다. 이 영화처럼 로맨틱하게 진행되고, 끝나면 좋겠지만, 현실은 발정난 남녀의 여행이라는 일탈의 이름으로 아무도 모르게 하룻밤 짝짓기 아닌가.

'사랑을 해 본 적 있는가' 라는 대답에 나는 아직 '그렇다'라는 대답을 할 수 없다. 恋와 愛는 다르다. 好きだ와 愛してる의 감정도 다르고. 내 인생은 과연 '그렇다'라는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러길 바라는데 말이다.

좋은 영화다. 후속편이 나와있다는 것이 이미 충분히 희망적일 정도로. 
Posted by m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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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감독 제임스 건 (2014 / 미국)
출연 크리스 프랫,조 샐다나,데이브 바티스타,빈 디젤,브래들리 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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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31

나는 이 영화의 가벼움이 좋다.
진지하지도 않으며, 미국이 지구를 구하지도 않는다.
물론 왜 전 우주에서 미국 영어를 쓰는 건지 이해할 순 없지만.
특별한 능력자도 까무러칠 정도의 부자도 없다.
영화에서 대놓고 말한다. '루저들'이라고.
그래서 난 이 영화가 만족스러웠다.
캐릭터 설명도 부족하고, 짜임새도 그저 그럴 수도 있지만, 
난 오히려 빡빡한 영웅물들보다는 이런 엉성한 영화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앞으로의 시리즈가 기대된다.

물론 일산 CGV의 4DX는 무척 실망스러웠다(네이버 블로그 쪽에 썼으니 여기엔 적지 않겠다)

마지막에 그루트가 모두를 살려내는 장면에서, 결국 인간은 자연 속에서 존재하고, 자연에게 보호받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최고의 매력은 역시 OST 아니겠는가.
<AWESOME MIX VOL.1>

1. Hooked on a Feeling Blue Swede
2. Go All the Way The Raspberries
3. Spirit in the Sky Norman Greenbaum
4. Moonage Daydream David Bowie
5. Fooled Around And Fell In Love Elvin Bishop
6. I'm Not in Love 10cc
7. I Want You Back Jackson 5
8. Come and Get Your Love Redbone
9. Cherry Bomb     The Runaways
10. Escape (The Piña Colada Song) Rupert Holmes
11. O-O-H Child   The Five Stairsteps
12.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Tammi Terrell

출처:http://www.amazon.com/Guardians-Galaxy-Awesome-Mix-Vol-1/dp/B00KLF5J64

개인적으로 가장 반가웠던 곡은 보위의 Moonage Daydream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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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감독 리들리 스콧 (1982 / 미국)
출연 룻거 하우어,해리슨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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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31

30년도 더 된 영화다보니(해리슨 포드가 젊은 오빠 시절) 지금 보기엔 영상 등이 조금 촌스러운 느낌도 있으나, 괜찮았던 영화. 클래식의 클래스는 어디 안 간다는 느낌이.

이 당시에는 브라운관 텔레비젼 대신 평면 화면이 등장할 거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나보다. 
아직은 일본 자본이 대세이던 시절인가보다. 토탈리콜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꼭 SF영화들에서는 빈민가가 극동아시아의 모습으로 연출되어 있다. 이 당시야 지금과 다르니 이해는 가지만, 이 모습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으니, 구미의 아시아 지역에 대한 시선이 과연 언제쯤 바뀔까- 싶다. 쉽게 바뀌지도 변하지도 않는 것이 인간의 인식이지만.

벽에 똥칠하고 살아도 오래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고,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지 않을까. 하물며 수명이 4년으로 한정된 복제인간 조차도 오래 살고 싶어하는데. "모든 순간들은 시간 속에 사라지겠지."라는 대사처럼 나 역시 시간 속에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존재겠지. 그래서 나의 살아가는 의미와 목적을 다시금 생각해봤다. 벽에 똥칠하기도 전에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수도 있지만. 영원히 존재하는 생명은 없고, 어떤 존재든 탄생과 죽음 사이의 '삶'을 시간 속에서 보내다 사라진다. 머리로는 알고는 있지만, 마음은 쉬이 받아들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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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타이핑 중!
감독 레지 루앙사르 (2012 / 프랑스)
출연 로맹 뒤리스,데보라 프랑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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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24

1950년대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화면과 그 시대의 예쁜 의상들, 그리고 사랑스러운 두 사람.
여주인공 로즈가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중간의 일일 약혼녀로서 함께 춤 추고 가족들과 즐기는 장면이 참 좋다
영화를 보니 나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진다
어릴 때엔 스릴러를 좋아했고, 그래서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언니들이 유치해도 로맨스 장르를 유독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간다. 30대 후반~50대 초반이 막장물을 좋아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 취향이 원숭이 상이라는 것에 대해 더 이상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원작 팬들은 다 싫어하지만 나는 꽤 좋아하는 영화 <빅 픽처>에도 나온 남자주인공 로망 뒤리스.
잘 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내 취향이니까 좋으다....-,.-
활동 많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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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감독 실뱅 쇼메 (2013 / 프랑스)
출연 귀욤 고익스,앤 르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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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있음.

뇌는 참 간사하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기억하고 싶은 모습으로 기억한다. 이래서 기억은 믿으면 안 되지만, 믿어버리게 만드는 걸 보면 평생 뇌에게 놀아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폴의 기억도 마찬가지이다. 잊고 싶은 기억은 잊고, 그 기억은 이후의 기억들도 모두 왜곡시킨다. 아빠가 자신에게 소리지르는 것만 기억하고 있어 평생 아버지를 미워했지만, 그것은 기억의 왜곡에 의한 오해였고, 새로 꺼낸 기억에서 아버지가 엄마를 폭행한다고 생각했지만 , 둘은 연습 중이었을 뿐이었다. (몰랐는데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가 주인공 폴이라니! 가발의 힘!)

이모들이 피아노에 집착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세 자매의 아버지는 피아노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조카를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사랑스러운 막내 동생을 피아노 때문에 잃다니. 이모들이 결혼하지 않고 조카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자신들 때문에(물론 이모들 때문은 아니지만) 아이만 남겨두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마담 프루스트. 폴이 마담 프루스트와 함께 한 시간은 길지 않을테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들이 폴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었고, 아버지에 대한 오해도 풀었고,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부모님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시절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나 저러나 개구리들이 나와서 피아노 콩쿨의 청년부에서 우승을 거머쥐었고, 그녀가 두고 떠난 우클레레를 취하면서 제 2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폴이 어렸을 때 수 많은 사람들이 폴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 속에서 엄마 아니타는 말한다. 내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다고. 마담 프루스트는 폴에게 폴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찾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촉매제 같은 사람이다. 

대사들이 참 좋다. "기억은 음악을 좋아한다", 실제 원어는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번역은 "화장실에도 당신이 떠난 자리는 아름답다라고 써있는데, 왜 지구상에서 떠나는 인간의 자리는 아름답지 않은거야!"식의 대사도 좋았고. 
영상도 참 좋았고(특히 색감), 음악들도 좋았다. 특히 폴의 콩쿨 연주 장면. 클래식에 밴드사운드가 더해져 장르가 크로스 되는 게 인상적이었다. 나까지도 신나더라. 

마지막 대사에 눈물이 날 뻔 했다.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태어날 내 동생들의 아이들에게 나는 너희 엄마, 아빠를 사랑한다고, 그래서 너희들에게도 좋은 고모, 이모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도, 엄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고, 그 사랑을 너희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고 말해주고 싶다. 가족 간의 사랑이 가슴에 울리는 영화였다. 

그리고 본격 프랑스 과자 '슈게트' 영업 영화.
Posted by m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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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하
감독 노아 바움바흐 (2012 / 미국)
출연 그레타 거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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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나는- 아마 이 영화를 일본에서 봤더라면, 극장을 나오면서 근처 편의점에서 호로요이라도 한 캔 사서 쭈욱 들이마신 후, 살짝 취기가 올라 온 몸이 벌개진 상태로 담배 한 대 피우고 나서 집으로 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전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나는 일본에서 4년 동안 영화를 단 한 편 밖에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사랑스럽나? 내게는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영화가 아프다. 아픈 상처 자국을 보는 듯 하다. 한편으로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에 물이 닿는 것 같기도 하고.
 
프란시스의 외로움, 고독,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함- 모든 것이 나의 이야기 같았다.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내는 것도, 집세에 눌려 사는 것도, 모두 일본에서의 나의 모습 같았다. 일 년에 두 번, 학비 내는 달은 거지가 따로 없어, 밥은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3끼 먹어야 했고, 전기, 가스가 끊겨 친구 집에서 신세 지기도 하고, 100엔으로 1주일을 버텨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 와중에 생필품이라도 떨어지게 되면 비참함은 10배가 된다.

이 넓은 땅에, 수 많은 사람들이 사는 대도시에서 내가 있을 곳, 나를 필요로 하는 곳, 내가 당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니- 이것 만큼 자신이 비참해지는 일도 없다. 많은 사람들과 엮여서 살고 있음에도, 딱 나의 두 발만이 서있을 수 있는 공간만 존재하고 사방으로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가 있어, 아슬아슬하게 그저 어떻게든 버티고 서 있을 뿐이다. 
그녀의 undatable 상태는 그녀의 탓이 아니다. 프란시스는 그저, 조금 더 자신의 삶의 중심을 잣니에게 두고, 삶 속에서 자신의 비중을 크게 다뤘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들과 만나 반갑고, 집이라는 공간의 따뜻한 기운에 잠시 취하지만, 화장실 도대체 언제까지 쓸 거냐는 엄마의 핀잔은 이내 자신이 타향에서 느끼고 있던 나만의 시간, 온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자유가 이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아. 나도 겪었던 일이다.

sns에 좋아보이는 이야기들만 쓰는 이유가, 엄마가 볼까봐- 라는 프란시스의 베프 소피의 말에도 공감이 갔다. 외국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 마냥 좋을 순 없다. 외국에 나가는 순간부터 모두가 반쪽짜리 인간이 되어버린다. 어디에 있든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잘 지내?" "나야 잘 지내지~ㅋㅋ 엄마는? 다들 잘 지내?" "응~ 여기도 잘 지내지~"라는 대화는 결국 서로가 서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쌍방의 선의의 거짓말이다. 전혀 잘 지내지 못하더라도 대답은 "잘 지내" 하나 일 수 밖에 없는 걸. 그 외의 대답은 양쪽 모두 불가능에 가깝다.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밖에 없다. 결국 소피는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뉴욕으로 돌아온다. 

살아가는 것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눈에 보이는 것들, 들리는 것들, 느끼는 것들을 평소와는 다른 것으로 바꿔줄 필요가 있다. 여행도 그 중 하나일테고. 돈이 없음에도 프랑스로 떠나는 작은 일탈이 나는 부러웠다. 그리고 그런 작은 일탈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지금의 나의 생활은 분명 잘못되었고, 나를 좀먹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와 내 삶을 소중히 하고 싶다. 지금의 나는 마치 아이를 사교육판에 맡겨놓고 커피숖에서 수다 떠는 아줌마 같다.

본인이 희망했던 무용가가 아닌 다른 삶을 사는-우체통의 이름표 사이즈가 맞지 않아 이름이 잘리도록 접어 사이즈를 맞추는 것처럼, 세상에 맞춰사는- 프란시스의 지금에 '결국~게 되었다.'라는 말은 붙이고 싶지 않다. 어떻게 살든 언제나 그것은 최선이고, 능동일테다. 프란시스의 삶에, 나의 삶에 '결국'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프란시스가 부럽다. 나보다 조금 더 어리니까. 영화관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나는 나의 20대를 돌려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직도 철 없이,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이유는, 내 20대는 분명히 나만을 위한 삶이었음에도, '내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고 꽃이 필 나이에, 나를 너무 혹사시켰다. 그런 20대가 지나고 내게 남은 건, 내가 얼마나 나를 혹사시켰는가-에 대한 부심 팔이 정도. 내가 누리지 못한 20대를 지금에라도 누리고 싶은 마음인 건 아닌지-라고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영화 속에서 벤지는 프란시스에게 27살은 이미 늙은 거라지만, 내 나이 30살은 아직 무엇이든 able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9월까지 아침 일을 구하든, 아예 일을 바꾸든, 무언가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10월에 호주에 갈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내년 5~6월 쯤에는 돌아와야 하니 오래는 못 있지만. 좀 더 생각해보고 결정해야하는 일이니, 일단 가능성은 열어두기로. 

Posted by m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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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감독 빌 어거스트 (2013 / 스위스,포르투갈)
출연 제레미 아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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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사망한 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내가 죽은 후, 나에 대해 나의 사람들은 어떻게 말해줄까. 그런 걸 떠나서 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고 싶다. 기억 속에서 지워진 사람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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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든 어지러운 혼돈의 시기가 있다. 현재 다시 강하게 부딛히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도 그렇고. 이집트, 터키, 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정권에 반대한 시위도 일어난다. 영화 속에서 포르투칼 역시 살리자르 라는 독재자가 비밀경찰, 시민탄압 등의 전형적인 독재정치를 펼쳤고, 그에 대항하여 비밀경찰을 폭행하거나, 혁명을 일으키려는 움직임들이 나온다.
한국도 현재 움직이는 사람들은 움직이고, 그 움직임도 다양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라고 불릴 정도로, 대한제국-식민지 시대-독립-남북 분단-한국 전쟁-군부 독재정권-민주화 시위-IMF경제 위기까지, 모두 100년 안에 일어난 대한민국의 20세기.
나는 솔직히 과거의 사회의 산통을 간접적으로 듣고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니가 저 상황이었다면 넌 어떻게 할 거니. 움직이니? 아니면 조용히 소시민 1인으로 살아가니. 촛불집회도 나가본 적 없는 나다. 2002년 월드컵의 거리응원, 대규모 응원 현장에도 간 적 없는 나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피와 상처를 각오하고 싸워서 이루어낸 것들에 숟가락만 얹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삶을 소중히하며 살아가면서 말이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나 같은 팔짱만 끼고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숟가락만 올리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100년이 넘는 투쟁의 역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였고, 그리고 찾아온 (일단은)평화의 시대에 다시 그런 혼란을 소환하고 싶지 않을 것일 수도 있다. 난 더 이상 한국이 투쟁, 시위 등으로 정세가 바뀌거나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의 삶이 너무나도 중요, 소중해졌고, 사회보다는 개인의 삶이 우선시되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사회에 속해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다. 너와 나, 우리, 그리고 사회-라는 개념이 있어야 하는데, 그저 나와 내 자식, 내 가족만 존재하는 건조한 사회로 변해가고 있고, 사회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과 안타깝게도 '대립' 구조로 변하고 있다. 나는 양쪽 다 속하지 않은, 아니, 어느 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착각일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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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기' 혹은 '우연히 도착한 낯선 곳에 정착하기'는 누구나 한 번 쯤은 꿈은 꿔보지만 대부분이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이기도 하다. 주인공 레이몬드는 중년을 넘어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에 갑자기 훌쩍 떠나 며칠을 그곳에서 머문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그에게 그곳에서 만난 여자는 묻는다. "Why don't you just stay?"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 내 인생과 삶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다.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두기로 했다"고.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그 계획만을 보고 달려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어느 날 예고치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이 나와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며칠 전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사장이 물었다. "그래서 @@씨는 최종적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요?" 대외용으로 준비된 대답을 했다. "아시아로 돌아온다면 일본으로 가서 취직하고 싶어요." 

나는 내가 아직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아직'인지 '이제는'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나는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불안하고 캄캄한 나의 앞날을 그저 '가능성'이라는 말로 연막작전을 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바랐다.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나기를-하고. 어딘가 정착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그때부터 나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생각해 보려고 해도 나의 머리는 바로 도피하기 때문에, 그 상황이 닥치지 않으면 모를 것 같다. 다만 그놈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만큼 아주 조금이라도 '가능'으로 바뀔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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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Posted by m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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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감독 소피아 코폴라 (2003 / 미국,일본)
출연 빌 머레이,스칼렛 요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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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년의 무비스타가 일본 동경에 업무상 출장을 와있고, 한 젊은 여자는 남편과 함께 남편의 일로 일본 동경에 와 있고. 남자는 출장지에서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난 거고, 젊은 여자는 남편이 출장간 사이에 나이 많은 돈 많은 남자와 바람이 난 거고. 

보는 내내 둘이서 사고(?)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사고는 다른 여자랑 치네.
육체적 바람과 정신적 바람, 무엇이 더 위험한가-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곤 하지만, 이 영화는 정신적 바람에 가까운 것 같다. 라고 말하는 건 너무 영화를 못되게 말하는 거겠지?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일본이었다. 소피아 코폴라 자신도 일본을 많이 좋아하는(동경하는) 듯 하고, 소피아 코폴라 뿐이겠는가, 수 많은 북미, 유럽의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일본 문화에 동경해왔다. 오죽했으면 쟈포니즘(Japonism)이라고 부르며 자신들의 일본에 대한 사랑과 동경을 당연시 했을까. 특히 예술가들 말이다.

소피아 코폴라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해 털어놓은 것 같다. 그녀에게 동경은 동서양이 혼합된 이국적이며, 그러나 타지에서 이방인으로서 느껴지는 소외감과 외로움. 동경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로맨스의 탄생?까지. 

다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10년도 더 전의 동경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는 동경의 모습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떠나온 지 3년이 되어가고, 이제는 갈 때마다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는 곳. 동경에서 살았던 4년 동안 일본은 변하지 않는다, 고인 물과 같다- 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밖으로 나와, 그 4년의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를 보니, 세상에 고인 물같은 사회는 없다. 한국과 변화의 속도가 달랐을 뿐. 일본에 가기 전에 이 영화를 봤다면 분명 다른 느낌이었을테다. 나도 그녀처럼 동경東京이라는 도시에, 일본이라는 나라에 비슷한 동경을 갖고 있었을테니 말이다

극중의 일본어의 자막이 없는 점에 대해선,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자막이 없어도 상관 없는지라. 일단 통역하는 아줌마가 일단 통역을 못 하네......... 밥(남자 주인공)을 괴롭히는 줄 알았잖아요.........

샬롯의 외로움에서 오는 불안은 알 듯 했다. 샬롯의 정신적 외로움은 해결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멀리 떨어져있는 가족에게도, 남편에게도 점점 자신의 자리가 없어져가는 것을 느낀다. 떠나있는 자의 자리는 언젠가 사라진다. 나 역시 경험했던 일이고.

이 두 사람에게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발전(?)했을까. 결국 밥이 있던 곳으로 돌아감으로써 두 사람의 짧은 정신적 로맨스(정신적 바람)는 끝나지만. 소통의 부재와 외로움 속에서 교감한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지만, 이러나 저러나 정신적 바람을 로맨스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여행, 낯선 곳-이라는 글자들은 종종 사람을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개인의 삶에서의 축제이기도 하고, 축제는 혼돈과 무질서들을 허락해주니까.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이 며칠의 시간은 짧은 축제였을 것이다. 늘 축제 속에서 살 순 없어. 
 
Posted by m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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