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셋
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 (2004 / 미국)
출연 에단 호크,줄리 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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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9년 후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비포 선라이즈>가 로맨스 영화였다면, <비포 선셋>은 그 장르를 조금 달리한 영화였다. 
개인적으로는, <비포 선셋>이 조금 더 마음에 남았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조금은 의도된 재회,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라는 짧은 시간.
9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준 어색함인지, 아니면 9년 전 다시 만나자고 했던 약속이 엇갈려서인지, 처음엔 둘의 대화가 겉돌았지만, 두 사람은 9년 전처럼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 러닝 타임 내내.

9년이 지나 30대가 된 그들은 20대의 그들과는 달랐다. 셀린이 꺼내는 이야기의 주제도 더 이상 그들이 아닌, 세상 이야기가 되었다. 조금은 가벼웠던 남자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에 눌려 살고 있고, 다소 진지했던 여자는 많은 관계의 상처 속에서 나약해져 있었다. 

영화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다 머릿 속에서 사라지네.
그저, 30대의 그들은 더 이상 20대의 그들과 같지 않다는 것.


나이가 서른이 되었다. 더 이상 20대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계속 일본에 있었더라면 지금 이 순간 나는 29세의 20대인데, 지금의 나를 20대로 자각할지 아니면 한국 나이대로 30대로 자각하고 있었을지. 20대에는 와닿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던 '현실'이라는 말이 30대에는 옭아매기까지 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20대이고 싶은 나는- 30대가 되고 싶지도, 보통의 30대처럼 그놈의 빌어먹을 '현실'이라는 단어를 내뱉으며 분명 후회하고 아쉬움이 있는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선택을 최선이었다며 자위하고 싶지 않다. 


삶의 많은 순간- 아! 그때 이랬더라면! 이라는 절정의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제시에게는 늘 6개월 후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던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제시만큼의 지독한 아쉬움이 남는 순간은 없는 것 같다. 전에 내게 물었다. 인생을 리셋한다면 어디에서 리셋하고 싶냐고. 그래서 '311지진 이후 한국으로 일시귀국을 않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갑자기 내가 너무 과거에 묶여 살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훗날 제시만큼의 아쉬움을 느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 인생을 리셋하고 싶은 타임이 없다고 대답하고 싶다. 30대가 되니(만으론 20대인데!) '죽음'이나 '삶의 길이' 이런 것들이 무척 크게 다가온다. 내 삶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마냥 길게 잡고 살고 싶지는 않다. 길게 산다면 그건 '덤'이라고, 우왕 럭키~라고 생각하고. 
재정비가 필요하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새로운 출발점에 설 때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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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차갑고 건조해져버린 셀린의 변화가 조금 슬펐다. 하지만 배에서 내려 차를 타고 셀린의 아파트로 가면서, 셀린에게서 나와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면서, 그녀는 그저, 외로울 뿐이라고 느꼈다. 특히 "I mean, I'm really happy only when I'm on my own. Even being alone... it's better than... sitting next to a lover and feeling lonely."라는 말은... 내가 늘 하는 말이다.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삭막한 사람들이 가득한 파리에서 혼자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며 산다. 게다가 잊지 못하는 남자는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어 행복해 사는 것 처럼 보이고. 셀린이 변한 게 아니라, 셀린이 처해있는 상황이 변한 것이다. 낭만은 못 믿겠다, 더 이상 사랑은 하고 싶지 않다-라는 셀린은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외로운 사람일 뿐이다.
Posted by m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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