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라이즈
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 (1995 / 오스트리아,스위스,미국)
출연 에단 호크,줄리 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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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본 비포 선라이즈.
조금 더 어렸을 때, 이 영화의 후속이 두 편이나 더 나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때 봤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장면들이 많았지만, 그 중 가장 마음에 든 장면은 두 가지. 
하나는 비엔나에 내려 들른 레코드 샵<Alt & Neu>(영어로는 Old & New)의 음악 감상실에서 음악을 듣고 있을 때의 두 사람의 시선 교차. 셀린(줄리 델피 분)이 제시(에단 호크 분)에게 눈길이 가고, 제시와 눈이 맞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끌리는 것이 들키지 않도록 눈을 피하고. 나는 그 장면이 너무나도 설레었다. 남녀가 서로에게 동시에 마음이 끌린다는 것,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또 하나는 실내 카페에서 각자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에게 전화를 건다는 설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씬. 두 사람은 서로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 상대방의 진심을 듣게 된다. 난 이 씬이 무척 낭만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20대라서(!)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30대가 되어, 어느 한 쪽이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현실에 들어가 있다면, 더 이상 상대방의 상콤달짝한, 사랑이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대로 들어주지 못하고, 이미 그런 맛을 느끼는 감각을 잃은 혀로 '현실'만 알려주려 할테니 말이다. 그리고 30대이고, 친구들의 반이 결혼하였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런 장면은 내 삶에선 판타지에 가까운 것일테다. 

둘이 공원에서 밤을 지새우고 오전부터 셀린의 반팔티가 없어진 것(!)이 눈에 띄였다.

여행은- 현실과 생활 속에서 가장 큰 일탈일 것이다. 여행지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혹은 누군가에게는 동성)을 만나, '로맨틱'한 짧고 강렬한 사랑을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판타지이기도 할테다. 나를 제외하고. 나는 사절하고 싶다. 이 영화처럼 로맨틱하게 진행되고, 끝나면 좋겠지만, 현실은 발정난 남녀의 여행이라는 일탈의 이름으로 아무도 모르게 하룻밤 짝짓기 아닌가.

'사랑을 해 본 적 있는가' 라는 대답에 나는 아직 '그렇다'라는 대답을 할 수 없다. 恋와 愛는 다르다. 好きだ와 愛してる의 감정도 다르고. 내 인생은 과연 '그렇다'라는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러길 바라는데 말이다.

좋은 영화다. 후속편이 나와있다는 것이 이미 충분히 희망적일 정도로. 
Posted by m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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