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렛 도넛
감독 트래비스 파인 (2012 / 미국)
출연 알란 커밍,이삭 레이바,가렛 딜라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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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결말 스포 소량 포함, 그래도 치명적 스포는 없음.


파워블로거 이웃님의 시사회 이벤트를 통해 다녀온 시사회.
리뷰 작성 가능자 위주로 뽑는데다가 작성 가능하다고 썼기 때문에 당첨. 보고 왔으니 써야지.
어제 퇴사한 덕에 드디어 시간과 체력에 여유가 생겨 그동안 미루어왔던 일들을 하련다.
근데 나는 리뷰를 쓰지 않는다. 그럴 능력이 없으며, 그냥 보고서 느낀 감상만 주저리 주저리 적을 뿐.



<초콜렛 도넛>은 장애인, 성소수자, 어느 사회에서든 배척받는 존재들의 이야기이다.
외국어 표기법에 의하면 '초콜렛'이 아니라 '초콜릿'이라서, '초콜렛'이라고 표기된 영화명이 거슬리는데다가 검색할 때마다 '초콜릿 도넛'이라고 써서 두 번 검색하게 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이런 건 내 문제이니 패스.(이런 건 좀 배급사에서 신경써서 해줬으면 좋겠다.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게 아니라, 신경 썼어야 했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족이지만, 올해 윤종신 씨의 파리바게트 로고송도 '바라다'의 변형인 '바라왔던'을 한국인들의 대표적인 잘못된 국어사용의 예인 '바래왔던'으로 발음해서 들을 때마다 거슬렸던 2014년의 여름이었다)

조금 진부한 스토리에, 영화제 15관왕이라는 홍보 문구에 비해 영화는 생각보다 평범했고,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영화는 70년대 미국 서부라는 배경으로, 성소주자와 장애인이 어떤 차별을 받아왔는지 묘사한다.
장애 아동에 대한 차별보다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좀 더 부각되어 있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에서 40년 정도 지난 현재 21세기인 2010년대의 미국은 많이 변해있다(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미국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미국은 자유분방한 진취적인 사회일 것이라는 것. 살아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문헌과 방송으로 접한 미국은, 아주 지극히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이다. 이 점에 대해서 학사졸업논문 쓰다가 질려서 나가 떨어질 정도로.). 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동성 결혼 합법화가 이루어지는 주가 늘어나고 있고(물론 아닌 곳도 있다), 변화의 바람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영화 속의 판결문에서 '아이가 잘못된 성가치관을 가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라며 두 사람의 입양을 거부한다.
영어로는 뭐라고 되어있는지 모르겠지만, '잘못된 성가치관'이라는 단어가 불편하기 그지 없다. 물론 지금에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한국 사회도 동성애가 수면위로 올라온 건 얼마 되지 않는다(2000년의 홍석천 씨의 동성애 커밍아웃은 충격적이었지만, 그리고 유교 전통 사회였던 20세기의 한국 사회가 바뀌어 나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동성 결혼은 합법화는 백 년 후에는 가능할까? 싶을 정도이고, 합법화는 커녕 차별과 편견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한국은 유교에서 기독교로 이어지는 점에서 상당히 보수적인 사회인데다가, 한국 국적 남성들에 대한 징병제는 동성애와 민감한 관계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성애에 관해서는 일단 징병제가 폐지되어야 이야기가 가능해질 것 같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걸 떠나,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인식이 변해간다면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한국 사회는 '동성애는 더럽다'라는 인식이 꽤 깊게 박혀있기 때문에 과연... 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영화 내에서 계속 루디는 자신들을 부모로 인정해주지 않는 검사측과, 판사가 내린 판결에 대해 '차별'이라며 반박한다.
미국은 참 '차별'과 끊임없이 싸우는 나라이다. 그래도 미국은 변화해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주 천천히, 힘겹게이지만. 미국은 거기에 인종차별이라는 영원한 숙제까지 가지고 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성소주자나 장애인 뿐만 아니라, 편모, 편부 한가정 부모의 자녀들, 다문화가정, 심지어 부모의 학벌, 생활 수준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존재한다. 일본에서는 재일조선인 문제가 컸던 것 같다(이는 현재 함께 개봉중인 <60만번의 트라이>에서도 다루고 있다). 유럽에서는 성가치관이나 가족 형태에 대해서는 개방적이지만 역시 인종문제, 종교문제가 사회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이제는 정말 '차별'은 사람의 본능인가 싶을 정도인데, '차별'이라는 것이 분명히 문제를 갖고 있으며, 없어지도록 노력해야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사회와, '너는 저 아이와 달라. 저 아이보다 잘나야해.'라며 어릴 때부터 타인을 '차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회를 같다고 볼 수 없다.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갈등을 겪고 있다면, 그 '문제에 대한 인식'과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수적이지만, 구성원 모두가 그러한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마치 생명력이 희미해진, 죽어가는 사회처럼 느껴진다(어느 한 사회를 꼭집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에 관한 이야기로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도 비슷한 형식으로 전개되었던 것 같은데, 주제 접근 방식이나 결말 부분은 <초콜렛 도넛>이 좀 더 내 마음이 든다. 사건의 경과 어쩌면 결과를 폴(검사)이 이들이 함께가 되는 것을 방해한 사람들에게 보내는데, 단순히 '이러면 안 돼, 세상은 바뀌어야해'라는 메시지가 아닌, 죄책감을 느끼게 하여 '책임'을 묻는 형태라는 점이, 그리고 관객들에게 그 책임을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 장애인과 성소주자라는 사회적 약자라 불리는 이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

'노력'이 그 순간에는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어도, 그것이 계기가 되고, 주변 사람들을 조금씩 바꿔나간다면, 언젠가 큰 변화가 된다고 믿는다.



알란 커밍의 연기는.. 연기가 아닌 것 같다. 정말 그 사람 같았다. 찾아보니 알란 커밍 역시 커밍아웃을 한 성소수자. 그가 이 영화에 임하는 마음은 사뭇 달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추천한다.
우선 나는 나비효과를 광적으로 믿는 사람이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동성애에 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변화하거나, 최소 마음의 벽이 낮아질 수 있다면, 언젠가는 괜찮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수위가 위험한 성행위 묘사는 없다.
Posted by m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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