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Her, 2013)

가끔보는영화 2014. 5. 29. 01:16 |
그녀
감독 스파이크 존즈 (2013 / 미국)
출연 호아킨 피닉스,스칼렛 요한슨,루니 마라,에이미 아담스,올리비아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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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5.28
-현재 극장 상영작으로, 스포있음. 주의-


나는 이 영화를 사랑의 관점에서 보지는 못했다. 깊은 사랑과 온 몸이 찢어질 듯한 이별의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 내가 이 영화를 사랑의 관점으로 보기엔 나의 인생 내공은 아직 그리 쌓이지 않았다. 때문에 내게 이 영화를 완전히 느끼는 것은 아직 큰 무리가 있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영화에서 나타내고 있는 연인 사이를 넘어,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소통이었다. 시대적 배경은 아무래도 미래사회인 듯 했고.  

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를 대필해주는 사람이다. 왜 사람들이 직접 편지를 쓰지 않고, 편지를 대필 업체에 맡겨서 보내는지 모르겠다. 부부, 연인, 가족... 심지어 단골손님은 시간의 단위가 십 년단위일 정도로 오랫동안 테오도르가 누군가 두 사람의 사이에서 대신 마음을 전해주고 있다. 어쩌면 직접적으로 감정을 전하는 것이 힘든 사회가 된 것은 아닐까. 그 편지를 받는 사람도, 그 편지를 읽는 동료도, 출판사 관계자도 모두 감동을 받는다. 무엇에 감동을 받는 것일까. 그것은 그냥 보내는 사람(의뢰인)의 마음이 들어가지 않았고, 쓴 사람(테오도르)의 마음 역시 들어가지 않은, 그저 꾸며써낸 대필 편지일 뿐인데 말이다.

거리와 지하철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에 작은 이어폰을 꼽고 있다.(이것은 어쩌면 수 년 후의 우리 생활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현재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은 단순히 화면을 띄우는 정도만 역할을 하고, 귀에 들어간 작은 기계에 명령하는 것들이 마치 현재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손가락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우리가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것들은 귀에 꽂은 기계를 통해 귀로 들리고 있고. 영화 속의 많은 사람들은 이 기계를 이용하여 손을 움직이지 않고 메일을 체크하고, 뉴스를 검토한다. 눈을 마주치는 일 조차도 없이, 주변을 둘러보는 일 조차도 없이, 어딜 바라보는지 짐작도 안 될 정도로 시선을 어딘가로 버려버리고(전철에서. 물론 걸을 땐 앞을 본다), 귀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집중한다. 마치 현재의 헤드폰, 이어폰을 끼고 있는 것과 같다. 그렇게 타인과 스쳐지나가는 공공의 장소에서도 자신만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아주 어릴 적부터 함께 성장하였고, 사랑하여 결혼한 부인 캐서린과 이혼 조정+별거 중인 테오도르는 새로 구입한 인공지능 사만다와 감정을 교류하기 시작, 급기야 사랑에 빠진다. 아주 사소한 문제로 다투게 되어 결혼 생활 8년의 종지부를 찍은 오랜 단짝 친구 에이미는 이혼의 슬픔을 인공지능 친구에게 위로받는다. 그녀와 많이 달랐던 그녀의 남편은 6개월동안 티벳(아마)으로 묵언수행을 떠나버린다. 성공한 능력자로, 감정기복이 심한 편이었던 캐서린은 자신에겐 우울증 약을 권하더니 이제는 인공지능과 사귄다는 남편에게 왠지 모를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낀다. 

에이미와 남편은 서로간의 이해와 소통의 부재로 헤어졌고, 남편은 급기야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겠다고 떠나버린다. 캐서린과 테오도르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각자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밀어부쳤던 것이 원인이 되었다. 테오도르와 사만다는 각자의 너무나도 다른 상황에 처해있었고, 그 갭은 점점 커져만 갔다(테오도르에게는 사만다 하나 뿐인데 사만다에겐 8천명이 넘는 대화상대가 있었고,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사랑하는 641명 중 한 명일 뿐이었고). 사만다의 성관계 대리역을 자처하였던 이자벨라는 두 사람의 순수한 관계 속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현재 그녀의 관계와 그녀가 느끼는 사회에 순수한 관계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배경과 내용들이 나타내는 것은...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 사이를 매꿔주는 무언가...에서 느껴지는 영화 속의 사회는 무척이나 건조한 세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소통하지도 않고, 오래 사랑한 사람들끼리도 소통은 무척이나 어려우며, 실재하지 않는 존재에게 위로 받는다. 근데 이렇게 써놓고보니 지금과 크게 다를 것 없긴 하다. 아마, 영화에서 보여준 사회는 가까운 미래의 우리 사회가 될 것만 같다.

테오도르도 사만다도 두 사람의 사랑과 이별을 통해 비로소 사랑하는 법, 차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과정, 사랑을 나누는 과정, 사랑이 멀어지고 떠나가는 과정을 사만다의 목소리를 통해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스칼렛 요한슨은 참 예쁘지만 그저 그런 연기의 얼굴(과 몸)만 예쁜 배우...라는 느낌을 갖고 있던 배우였는데, 사만다의 목소리 역할을 참 잘 소화해낸 것 같다.


세상일이 마음대로 된다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생각하는 대로 잘 굴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은 개개인이 모두 각자 다르고, 서로가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들도 모두 다르니, 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체가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 갈 수도 있고, 어디로 튈 지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에 서툴고, 거리를 두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닐까 싶다(그러고보니 마치 동물을 두려워하는 내가 언제나 그들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다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끊임없이 직접 부딛혀 보는 수 밖에. 기쁨도 행복도 두려움도 아픔도 모두 감내하며, 경험을 통해 성장해가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와 우리의 삶의 숙명처럼 느껴진다. 


중간에 아시아스러운 곳이 나왔고, 나중에 엔딩크레딧을 보니 상하이인듯 했다. 중국자본이 들어가지 않은 헐리우드 영화는 찾아보기 힘든 것인가. 


전체적인 색감과 배경음악이 인상적이었다.
한 번 더 봐야 할 정도로 영화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듯 하여 횡설수설.
Posted by m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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