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보는영화
베스트오퍼(La migliore offerta, The Best Offer, 2013)
mosa.
2014. 7. 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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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3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오랜만의 영화.
이탈리아가, 세계가 사랑한 영화 <시네마 천국>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과 <시네마 천국>속에서 세계를 울린 음악의 엔니오 모리꼬네.
이 영화를 보는 도중에 생각했다. '감독... 엄청난 스토리텔러구나.'
스토리의 구성, 이끌어가는 능력은 듣는 사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화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만든다.
감각적이고 차분한 화면, 전체적으로 안정적이고 묵직한 연출.
근데 왜 난 음악이 기억이 나질 않나요...ㅠㅜ
※이하 스포 있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은 경험에서 나온다'
이것이 예술작품이든, 인간관계이든. 평생을 예술작품 감정에 바쳐온 최고의 감정사 '올드먼'은 예술작품 감정엔 누구보다도 많은 경험과 그로 얻은 예리한 감정능력을 갖고 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영 경험 없음. 수 십년을 함께 한 매니저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관심이 없었고(30년 전에 했어요...), 타인과의 접촉이 싫어 늘 장갑을 끼고 다닌다. 이성을 만나본 적도, 연애를 해본 적도 없으며, 편법으로 모은 예술작품-여성의 초상화-들을 집에 숨기고 보면서 자신과 자신의 삶을 위로한다. 20년을 함께 한 편법 파트너 '빌리'는 올드먼에게 원한, 앙심 등이 있었던 듯 하다. 영화 속에서 두 번 정도 그에 대한 원망을 뱉는다. 올드먼이 자신의 작품을 평해줬다면 자신은 훌륭한 예술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그런 이 영화의 기본적인 스토리 자체는 아주 오랫동안 올드먼과 가깝게 지내며,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빌리가 올드먼의 뒷통수를 치기 위한(스포) 치밀한 계획이긴 하다. 측근인 로버트, 로버트의 여자친구 사라, 집주인인 클레어, 집 관리인까지. 올드먼은 결국 빌리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린 거미와 같았다. 다만, 이 영화는 "스포는 거들 뿐".
'위조 작품 속에는 늘 진품의 면모가 감추어져있다'
올드먼은 작품 하나를 실수로 위작이라고 평가하고, 나중에 진품인데 실수로 팔았다고 말한다.
클레어가 "내게 어떤 일이 생기든 당신을 사랑했던 나의 마음을 알아줘요~"뭐 이런 대사를 하는데, 그녀의 마음은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거짓이었을까. 올드먼은 그녀가 떠난 후에도 끊임없이 그녀와의 함께 몸을 섞었던 순간을 되뇌인다. 그녀는 그 순간에도 진심이었을까 거짓이었을까. 그리고 클레어가 뱉은 저 대사도 되뇌인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결국 올드먼에게 희망고문을 준 말 아닐까.
'위조 작품 속에는 늘 진품의 면모가 감추어져 있다'는 대사(위조 작품을 그리는 작가들도, 결국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기 위해 그림 속에 무언가 표시를 해놓는다는 맥락에서 나온 대사이다)를 오히려 위조된 관계 속에서도 진실된 관계로 보이고 싶어하는 면모가 감추어져 있다... 라고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클레어의 대사는 위조 작가가 자신의 모작 속에 표시해 놓은 작은 표식과도 같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관계는 가짜였는걸. 진품의 면모가 감추어져있다고 해도, 그것이 모작 작가에겐 자신만의 진품일진 몰라도, 세상은 그것을 진품이라 하지 않고 위작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인간관계에서도 그 관계의 본질에 종종 헷갈린다. 상대방과 나의 관계가 서로가 맞지 않을 때가 있지 않은가. 나는 진심으로 대했는데 상대방은 나를 그저 계산에 의해 관계를 갖고 있을 때. 나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나를 고객으로 보고 있을 때. 등등.
미술 감정처럼 인간간의 관계도 이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최고의 감정사도 감정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니. 나의 그림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화실을 처음 했을 떄엔 오는 수강생들 한 명 한 명에게 기대도 하고, 정도 주지만, 3년이 지나니(현재 6년 쯤 되었다고 하신다) 더 이상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쉽게 기대도 하지 않고, 점점 심장이 딱딱해지는 것 같다고.
왜 진실하게 상대방을 대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고, 점점 굳어야만 하는 건지.
기력을 잃어버린 올드먼에게 관객이 감정 이입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도 살면서 서로가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모순된 관계를 누구나 경험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보호시설에 들어간 그를 찾아오는 건, 오랫동안 그를 보좌한 매니저 뿐. 올드먼은 그의 30년동안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유부남이라는 것 조차도 관심이 없었는데. 아마 그에게 유일한 진실된 관계.
나는 모든 사람들을 진실되게 대하고 있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나도 거짓된 마음으로 대하고 있다. 그 사람이 이런 나때문에 상처받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보려 해도, 아니다, 내가 거짓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이미 상처받았기 때문이다.
아주 아주 치밀하게 올드먼의 뒷통수를 친 빌리에게도 뭐라 할 수 없는 것은, 그에게 사기를 친 것은 뭐 이건 범죄지만, 상처받은 마음에 더 이상 진실로 대할 수 없는 상대방에게 거짓된 마음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는 빌리의 마음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그냥 관계를 끊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빌리같은 뒷통수는 빼고.